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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이슈

    이슈&이슈3 

    비거찬반칼럼


    비거는 진주만의 매력적인 문화관광콘텐츠이다

    - 시민단체의 주장에 대한 분석과 비판

    조현신진주시의회 운영위원장 

    최근 지역사회가 ‘비거 이야기’로 뜨겁다. 비거를 반대하는 시민단체는 비거를 ‘역사적 사실’로만 다루려 한다. 진주시는 비거의 역사적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으니, ‘관광자원’으로 개발한다고 했다. 논점이 서로 다른것이다.역사적 사실이 아니면 관광자원화 할 수없다는 시민단체에 대하여 걱정을 하는 시민들이 많다. 

     최근에는 억측 주장과 잘못된 해석으로 시민들을 분노케 하였다. 타 단체를 끌어들여 맞장구 연대를 요구하는 바람에 지역사회단체의 눈총을 받기까지 하였다. 내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나는 솔직히 비거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도를 모르겠다. 그들은 역사에 대한 이해도 없는 막무가내식 주장만 한다. 

     관광자원 개발이 목표인데, 왜 역사적 사실만 운운하는가 ? 역사밖 에 몰라서 폼을 재려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역사를 모르는 것인가? 시민단체는 얼마 전에 화제를 약간 바꾸었다. 비거의 ‘역사적 사실 여부 문제’에서 ‘문헌을 매도하는 방법’으로 작전을 바꾸었다. 

    ‘비거의 역할’을 설명한 자료를, ‘성 밖으로 도망간 성주’로 매도하여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문장을잘못해석하여억측주장을한경우도있다.비거를세상에 전하지 못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문장인데, 이를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옛날부터 그 제도가 있었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만 들 수가 있었으되 다만 세상에 전해지지 않았을 따름이다.” 여기 어디에 부정적인 의미가 들어가 있는가? 그런데도 착오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평구의 설화는 많은데, 비거에 관한 설화 만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비거에 관한 설화가 있다고 해도 아예 못 들은 척 하는 것 같다. 그러다가 이제는 비거 관련 최초 문헌들 을 부정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하였다. 신경준 선생의 『거제책』에 대해서는 누구한테 들었는지 적어놓지 않았고, 직접 만든 사람에게서 전해 들은 내용이 아니므로 신빙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또한 이규경 선생의 ‘비거변증설’에 대하여도 신경준선생이 주장한 내용 이외의 것은 모두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관련된 조상들의 후손들이 가까이 있었다면 감히 할 수 있었을까? 신빙성이 없는 문헌(『거제책』) 이라면서 증빙의 기준으로 삼는 이율배반적인 자세 또한 비판받아야 한다. 

    인천하늘고등학교의 비거 연구 결과도 매도 하였다. 결과는 ‘비거는 허구’라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내용을 보니, 지금까지 비거 연구에서 다루지 않았던 정평구 설화를 추가적으로 반영하여 보면 비거가 ‘유인 비거’ 가 아닌 적을 기만하기 위해 사람 대신 인형을 태운 ‘무인비거’ 일수도 있다는 하나의 설이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도 이것을 적고 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정평구,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 비거를 모두 인 정하였다는 사실이다. 정평구의 비거 이야기가 역사로 발전하게 되 는과정을탐구한결과도밝혔다.그런데비거반대론자는전체결 과는 언급하지 않고 자신에게 이로운 것만 취했는데 그것도 잘못 취해서 들통이 난 것이다. 

    결과는 이렇다. 정평구는 임진왜란 당시 실존인물 이었지만 설계도가 없어 비거의 실제 존재여부는 확인할 수가 없다. 하지만 정평구에 관한 전설은 구전으로 전해 올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보통 전설이 역사화된다고 할 수있다.이 연구에 참가한 인천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는 ‘현재 정평구의 비거이야기는 임진왜란 당시의 전설이 조선 후기의 한 실학자에 책에 기록되면서 역사로 발전하게 된 독특한 문화현상’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는 비거가 진주와 연관이 없다고도 하였다. 이유를 물으니 『거제책』, 『오주연문 장전산고』에 진주를 언급하지 않았고, 그 이 외의 책은 인정할 수 없다는 궁색한 변명이었다. 『거제책』과 『오주연문장전산고』를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왜 이경우는 인정을 하는 이율배반적인 답변을 하느냐에 대해서는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답변의 근거도 없고 일관성도 없이 추측으로 진주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권덕규 선생의 『조선어문경위』, 『조선사』 이 후의 많은 저서에서 심지어 어린이책, 북한 서적에까지 비거와 정평구, 임진왜란과 진주성이 연관 있다고 하였는데, 시민단체 일부만 이를 모두 날조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것도 잘 안되니까 슬그머니 ‘진주의 정체성’이란 말로 포장했다. 그런데 그들의 논리는 여기에서도 졌다. 정체성이란 시대정신에 따라 바뀌는 것 이므로 현재 우주항공도시로 가는 시의 정체성과 비거를 누가 틀렸다고말할수있겠는가? 

    우리는 지난날, 관광자원 콘텐츠에 대한 슬픈 기억을 갖고 있다. ‘유등’이라는 콘텐츠를 두고 서울시와 긴 줄다리기를 했다. 시장님, 공무원, 사회단체, 상공인, 일반시민들까지 서울시청에서 1인 시위 등을 벌였다. 우리는 유등이 단지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가치뿐만 아 니라 진주의 혼을 붙드는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을 모두 알았다. 만약에 그때 이것을 잃어버렸다면 우리는 살아있어도 산 것이 아닌 세월을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책, 언론, 관련 인물들을 통해서 비거가 진주것이라고 말하는데, 정작 우리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니 어찌 통탄할 일이지 않는가? 세계는 끊임없이 변한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요구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 해야한다. 과거의 틀에 구속되어 있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신을 진작시킬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비거와 함께 새로운 진주의 정신을 일으킬 수 있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잊지 말자. 비거! 진주의 미래 먹거리인 우주항공 산업과 같이 할 수 있는 매력적인 관광자원이자 콘텐츠이다. 


    비거(飛車), 진주성을 날았을까? 

    박철홍┃진주시의회 기획문화위원장 

    지금 진주시에는 비거 논쟁이 한창이다. 2020년 1차 추경 심사 때 올라온 ‘비거 제작 및 안정성 평가 용역’과 ‘비거 하늘을 날다’ 예산 을 의회에서 삭감하고 난 후부터 논란이 확대되었다. 우선 비거가 등장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문헌을 보면 조선 시대 지리학자인 신경 준(1712~1781)이 1754년 과거시험 문제 중 ‘수레에 대해 논하시오’ 에대하여다음과같이답을적어낸기록이다.  

    對。--- 飛風之車。奇肱之人所乘而來於殷湯之世者。而不過張華之志怪也。 不足煩說。而洪武年間。倭寇圍嶺邑。有隱者敎邑守以車法。登城放之。一去 三十里。此亦飛車之類也。人之才智。不可測度。有如是夫。 

    대답하다: 바람에 나는 수레는 기굉의 사람들이 타던 것으로 은나라 탕왕시대에서 유래된 것인데 장화(진나라 때 박식한 사람)가 기괴하게 여겼던 것에 불과 하니 번거롭게 말할 것이 못 된다. 홍무년 간(1368~1398)에 왜구가 영남의 읍을 포위했을 때, 어떤 이름 모르는 사람이 고을의 수령에게 수레타는 법을 가르 쳐 성에 올라 풀려나 한 번에 30리를 가니 이것 또한 역시 비거의 종류이다. 사람의 재주와 지혜로 측량하기 불가하니 이와 같은 것이 있을 따름이다. 

    이기록은하늘을날고싶은꿈을지닌사람이상상해지어낸이야 기를 옮겨 실었던 것으로 보이며 고려 말로부터 300여 년이 지나고 누가 한 말인것도 밝히지 않고,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상상으로 지어낸 비거에 관한 기록이 역사적 사실이 될 수가 없다. 비거에 관한 두번째 기록은 조선시대 실학자 이규경(1788~?)의 오주연 문장전산고에 들어 있는 비거 변증설이다. 여기서 이규경은 신경준의 기록을 인용하면서 ‘고려말 왜구’의 침략을 ‘임진년 왜적’의 창궐로 왜곡하고 우리나라 사람도 비거를  만들 수 있다고 확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후 비거에 관해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탓인지 20세기 이전까지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가 1914년 매일신보에 “진주 성이 함락 되었을 때에 정평구라는 사람이 기계를 만들어 성안으로 들어가 자기의 친구 를 구하여 내었다는 사적이 역사에 분명히 있으니...”라는 기사가 등장한다. 

    전북 김제 지방에는 정평구에 관한 설화가 많이 남아 있지만 여기에서 처음으로 비거 제작자로 날조해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김제 사람 송기면 (1882~1956)의 문집인 『유재집(裕齋集)』 속에 들어 있는 『정평구전』 에여러편의설화가있는데,그중진주와관련된이야기로는간략히 ‘계사년 진양 난리에 그(정평구)의 친구가 포위당하자 계략을 써 서 넘어 들어가 그와 함께 탈출하였다[癸巳 晉陽之亂 其友在圍中 用計超入 與之俱出].’라는 내용밖에 없다. 

    임진왜란 계사년 전투 때 7만 민관군이 장렬하게 전사한 진주성은 우리 진주시의 자랑이며 한이 서린 곳이다. 

    고을의 수령이 비거를 타고 탈출했다는 내용을 스토리텔링하여 관광 상품화하겠다고 하면 

    계사순의단에 잠들어 계신 영령들이 땅을 치며 한탄해 하실 것이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 최남선의 고사통, 권덕규의 조선어문경위, 한 국사 진단학회, 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에서도 비거에 관해서 언급 하였고 특히 한국향토문화 전자대전에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왜사기에 기록되어 있다는 날조된 내용을 적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가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신편한 국사에는 어디에도 비거에 관한 내용이 없다. 지금까지 비거와 관 련한 문헌으로 역사적인 정설로 인정받을 수 없는 기록과 왜곡, 날조된 경위까지 살펴보았다. 

    진주시에서는 비거 복원이라는 용어에서 재현, 구현으로 변경하였고 진주 시정 소식지 촉석루 3월호에서는 ‘비거를 통해 외부에 연락을 취하고, 군량을 운반하고, 공중에서 폭약을 터뜨리는 등 적을 혼란에 빠뜨린 조선의 비행기였다’라는 황당한 내용을 실었으며 본 의원이 행정사무 감사 시 비거에 대한 진주시 입장을 질의하자 ‘비거 는 역사적으로 고증되었다고 주장할 수 없 고,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궤변을 폈다. 

    지금 진주시에서는 비거테마공원을 조성하려고 한다. 127억 원을 들여 복합 전당대, 모노레일, 비거모형의 짚라인, 유스호스텔, 비거 전시관 등을 계획하고 있다. 

    공원 일몰제와 결부되어 망진상 일원을 매입 하여 난개발을 막아야 하지만 진주의 정체성 과 무관한 공원 조성은 재고하여야 한다고 본다. 

     매입만 해놓고 기본적인 관리를 하면서 개발 은 후대에 물려 주어 지금 우리보다 더 좋은 생각과 기술로 공원을 만들게 하는 것도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임진왜란 계사년 전투 때 7만 민관군이 장렬하게 전사한 진주성은 우리 진주시의 자랑이며 한이 서린 곳이다. 고을의 수령이 비거를 타고 탈출했다는 내용을 스토리텔링하여 관광 상품화하겠다고 하면 계사순의단에 잠 들어 계신 영령들이 땅을 치며 한탄해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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