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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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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학전통의 계승과 현대적 재해석 월봉서원(月峯書院)

    하진규유학자

    유학(儒學)이 조선의 지배이념이었던 시대에는 곳곳에 서원과 서당이 있어 학문을 진흥시키고 인재를 양성하며 사회를 교화하는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서원은 조선 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는 사립학교이다.


    월봉서원 입구

    김해시 장유면 덕정마을은 형세가 연봉을 뒤에 두고 추월산을 앞에 두어 그윽하고 깊으며 넓으면서 탁 트여 자고로 군자가 은거·강학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이 마을의 중심에 월봉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나는 젊은 시절 이 서원의 봉양재(鳳陽齋)에서 한학자이신 화재(華齋) 이우섭(李雨燮) 선생을 모시고 공부하였다. 그 뒤 상경하여 교편생활을 하게 된 후에는 매년 수차례 선생님을 뵙고 가르침을 받았으며 선생님 별세 후 지금까지 자주 서원을 찾고 강당에 앉아 추월산을 바라보며 공부하던 시절을 추억한다.

    덕정마을은 전주 이씨들의 집성촌이었다. 지금은 덕정마을이 장유 신도시 고층 아파트들에 둘러싸여 예전의 풍광 수려하던 모습은 많이 변하였으나 서원을 중심으로 일신재(日新齋), 연강재(蓮崗齋) 등의 건물이 어우러져 고색 짙은 거대한 한옥촌을 이루고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고택이 주는 예스럽고 중후하며 편안함을 저절로 느끼게 한다.

    유학(儒學)이 조선의 지배이념이었던 시대에는 곳곳에 서원과 서당이 있어 학문을 진흥시키고 인재를 양성하며 사회를 교화하는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서원은 조선 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는 사립학교이다. 선현을 제사하고 사림들이 공부하고 인격을 닦는 곳이면서 동시에 향촌 사림이 회합하는 장소이자 정치적, 사회적 거점의 성격을 강하게 지녔다. 그러나 서원의 고유한 기능은 존현(尊賢)과 강학(講學) 두 가지이다. 서원에는 선현에게 제사 드리는 사묘(祠廟), 교육을 담당하는 강당(講堂), 유생들이 공부하며 숙식하는 재사(齋舍)가 설치되는데 월봉서원 역시 이러한 공간들을 갖추고 있다. 사묘에서 드리는 향사는 의식이 엄숙하였으며 강당과 재사에서 이루어지는 강학은 엄격한 학규에 의해 운영되었다.

    월봉서원

    서원에는 선현에게 제사 드리는 사묘(祠廟), 교육을 담당하는 강당(講堂), 유생들이 공부하며 숙식하는 재사(齋舍)가 설치되는데 월봉서원 역시 이러한 공간들을 갖추고 있다. 사묘에서 드리는 향사는 의식이 엄숙하였으며 강당과 재사에서 이루어지는 강학은 엄격한 학규에 의해 운영되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유학이 이미 삶의 지표가 되고 사회의 주도적 이념이라는 지위를 상실한 상태이기에, 서원은 과거와 같은 학문을 연구하고 강학하는 기능은 거의 소멸되었다. 이에 선현을 제향하는 일만이 주된 기능이 되었고 전국에 남아있는 서원들도 거의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었으며, 그저 유서 깊은 유교 문화유산으로 남아 탐방하는 관광객들의 볼거리로 전락한 상태에 놓인 곳이 허다한 실정이다. 

    월봉서원은 영남 기호학파의 거유(巨儒) 월헌(月軒) 이보림(李普林, 1903~1972)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유업을 계승하기 위하여 월헌이 별세하자 사림의 공의로 1984년에 설립되었다. 

    월헌 이보림은 김해 출신으로 본관은 전주 이씨이다. 어려서부터 조부 농은(農隱) 이경현(李慶鉉)과 부친 봉정(鳳亭) 이승기(李承驥)의 훈도 아래 가학을 전수하여 경사(經史)를 섭렵하였고, 1920년 봄 서해의 계화도에 은거하고 있던 간재(艮齋) 전우(田愚)를 찾아가 그 문도가 되었다. 간재 문하에서 혁재(赫齋) 서진영(徐震英), 양재(陽齋) 권순명(權純命), 현곡(玄谷) 유영선(柳永善) 등과 학문을 강마하다가, 간재가 별세하자 서진영을 따라 변산의 진계정사(眞溪精舍)로 가서 학문을 익혔으며, 이어 호서의 망화재(望華齋)로 석농(石農) 오진영(吳震英)을 찾아가 그 학문을 전수받았다. 

    일제는 식민지화한 조선을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하여 우리 전래의 유학전통을 철저하게 파괴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1908년부터 자행된 서당 철폐와 보통교육의 실시 강행 이와 병행한 단발령의 강행 등이었다. 월헌 이보림은 이에 저항하여 전래의 의관과 두발을 지키면서 서당을 열어 전통 한학교육을 계속하였다. 덕정마을 부로들의 전언에 의하면 그 서당교육은 지금의 관동중학교 자리의 서당골에 있었다는 봉양재서당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후 서당골의 서당수업은 일신재서당으로 옮겼고 학생들과 부형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서당의 유지와 운영이 더욱 활성화되어 집이 좁아 학생을 모두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였다 하며 이는 광복 직전까지 이어졌다.

    서원과 서당은 귀중한 유교 문화유산이다. 

    우리는 서원과 서당들에서 단순히 현대사회에서 보기 드문 호기심 어린 관광목적지로 여길 것이 아니라, 

    향토문화와 역사를 체험하고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배우고 경험하는 귀한 공간임을 인식하고, 

    많은 이들이 탐방하여 옛 선비들의 학문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자신을 성찰해보는 뜻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한다.

    월봉서원은 월헌이 태어난 생가 건물이 서원으로 변모한 특이한 경우이다. 월봉서원의 규모와 외양은 소박하다. 전체적인 구성은 서원의 중심 건물이며 강당인 월봉서당이 자리한 오른편에 이보림 선생을 제향하는 사묘인 명휘사(明輝祠)와 내삼문이 있고, 강당의 맞은편에 위치한 봉양재는 옛 봉양재서당의 역사를 이은 건물로서 제2강당으로 사용되며, 관리사와 외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원과 관련된 주변 건물로는 선생이 강학하며 평생 기거하던 일선재(日新齋)와 선생의 아들이자 월헌의 학문을 계승한 근세의 유학자의 태두(泰斗)로 지칭하는 화재(華齋) 이우섭(李雨燮) 선생이 강학하고 기거하던 연강재가 있다.

    2009년 월봉서원의 강당 건물이 문화재자료 제464호로, 월봉서원 소장 고문서 일괄(月峯書院 所藏 古文書 一括)은 문화재자료 제469호로 각각 지정되었다. 중요 고문서는 간재유묵, 간재선생필첩, 석옹수찰, 혁재사고, 논어강의, 대학강의, 월헌가서찰, 월헌집, 월헌필, 경덕재자금부, 일신재계안, 추연서찰, 화양속리금강송도해주평양유기, 간재년보, 전주이공흥현시혜비서 등이다. 현재 서원을 운영하고 보존하는 이들에게, ‘유학의 전통은 이 시대에도 의미 있는 삶의 지표가 될 수 있으며 서원 내지는 서당은 어떠한 역할을 하여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커다란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월봉서원은 몇 군데 되지 않는 글 읽는 서원이며, 유학의 전통 계승과 문화적 사명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지역 유림의 정신적 구심체 역할도 하고 있다. 서원의 문화 활동 프로그램은 선현들의 충의정신과 전통학문을 현대적 계승을 중심으로 기획되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 명휘사에서 행하는 전통제향체험이 있고, 인문학 강좌, 사서 강의, 전통다도 강의, 서원음악회, 경전성독대회, 어린이 인성교육, 한지공예, 캘리그래피 등은 강당에서 이루어지며, 선비들의 충절과 선비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유적지를 선정하여 탐방학습도 실시하고 있다. 알차고 유익한 문화행사를 활발하게 시행함으로써 2019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유교지원국고보조사업체로 선정되었다. 서원의 종사자들은 더욱 내실 있고 유익한 유교문화를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주변을 정비하여 더 나은 문화공간을 조성하기 위한 사업도 계속하고 있다.

    서원과 서당은 귀중한 유교 문화유산이다. 우리는 서원과 서당들에서 단순히 현대사회에서 보기 드문 호기심 어린 관광목적지로 여길 것이 아니라, 향토문화와 역사를 체험하고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배우고 경험하는 귀한 공간임을 인식하고, 많은 이들이 탐방하여 옛 선비들의 학문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자신을 성찰해보는 뜻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한다.


    하진규(河陳奎) 1947년 진주시 이반성면 출생┃진주농림고등전문학교 졸업┃경남대학교 법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한문교육학과 졸업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 연수부 수료┃華齋 李雨燮 선생, 于人 曺圭喆 선생, 龍田 金喆熙 선생 문하에서 한학 수학 ┃서울 영일고등학교 한문교사 ┃『조선왕조실록』 『송자대전』의 국역사업 참여┃『可隱遺稿』 『釣隱集』 『漢城周報(缺號本)』 등 국역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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