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INJU REVIEW

    칼럼 & 논단

    칼럼&논단 

    정영효┃공공기관 이전으로 본 진주  

     김일식┃실질적 지방자치를 위한 주민자치 활성화를 촉구한다    

     김효실┃난 하필 지금, 여기에 왜 존재하는 것일까?    

     정우열┃포스트 코로나 시대, 진주문화예술계의 변화 


    이미지설명


    난 하필 지금,  

    여기에 왜  

    존재하는 것일까?       

    김효실┃영문학 박사   

    몇 년 동안 봄이 되면 세월호로 희생된 학생들의 모습이 아른거려 가슴이 미어졌다. 그런데 작년에 또다시 헝가 리에서 유람선의 침몰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는 비보를 들은 후부터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인재(人 災)나 천재(天災)와 같은 재앙이 왜 인류의 역사와 함께 공존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인간이 그저 목숨이 붙어있기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생 물이란 사실을 일깨워 주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굳이 알베르 까뮈의 말을 가져다 붙이지 않아도 허무한 세상 에 내던져진 나약한 인간 존재에 대한 서픔이 목젖까 지 치어 올랐다. 

    불가피한 인간 숙명에 대해 고심하면서 길을 걷던 중, 허 물어져 가는 담장 아래 곱게 피어난 들국화가 시선을 붙 잡았다. 그러자 갑자기 다음 같은 물음들이 제멋대로 머 릿속에서 출이기 시작했다. “왜 하필이면 순식간에 무 너져 버릴 것 같은 담장 아래에 그 들꽃은 자리를 잡았 단 말인가? 그 꽃은 부지불식간에 벌어질 일들을 예측은 하고 있는 것일까?”, “왜 하필 그 꽃은 그 담장 아래에서 그토록 아름답게 꽃을 피워내고 있단 말인가?” 이러한 궁금증이 꼬리를 물면서 “인간이 운명을 담보 받을 수 있 는 방법은 있기는 한 걸까?”, “공룡이 멸종된 지구상에  새롭게 출현한 인간종도 언젠가는 소멸될 수 있지 않을 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으로 머리가 무거웠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아주 길게 하지는 않았다. 아니 내 려놓아야만 했다는 표현이 더 솔직할 것 같다.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 나름대로 창조설이나 진화 론을 뒷받침하는 이론들을 살펴보기도 했는데 그럴 때 마다 무엇이 맞는지 결론을 얻기는커녕 더 혼란스러워 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문제를 반드시 알고 싶다는 나의 의지가 부족한 까닭일 수도 있을 것이다. 변명 같 지만 인간의 존재가 필연적이라고 믿기에는 사람의 운 명이 보잘것없고 우연적이라고 믿기에는 개개인에게 부 여된 삶의 당위성이 너무 분명하기에 그저 교란된 의구 심만 증폭될 뿐이었다. 인간운명에 대한 생각은 두뇌에서 다람쥐 쳇바퀴처럼 굴러갈 뿐 정확한 답을 도출해 내 지 못한 채, 그리고 해답이 명확하게 없는 질문들을 오 랫동안 붙잡고 있는 것은 정신건강에 결코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다음과 같은 엉뚱한 결론을 맺고 머리에서 지워 버리기로 결심했다. 

    “인간의 운명이란 ‘왜 하필’이란 의문사로 세포형성을 하 는 혼돈의 개체발생과도 같다.” 

    불가항력적인 사태로 인간의 자존감은 블랙홀에 내동댕 이쳐지고 아이러니한 현실은 터벅터벅 시계태엽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시간이 지나면 가슴을 치며 통곡했던 일 들도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다는 사실에 쓸함을 느끼 면서 나는 바쁜 일과에 집중했다. 2020년 1월을 보내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추상적으로 누적된 나의 두려움은 분명한 실루엣을 드러냈다. 21세기의 눈부신 의학기술이 코로나19의 확산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사 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에 사방에 지뢰가 묻힌 길 을 걷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지내야만 했다. 정신을 바 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날 재앙을 경험한 사람들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 을까? 사실, 인류가 출현하면서 원인을 명확히 파악할 수 없는 수많은 재난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해 오지 않았 던가? 14세기에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과 1918년 스페 인 독감은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참사가 아 니었던가? 인재이긴 하지만 스페인 독감과 더불어 제1 차 세계대전은 어떠했는가? 이어서 스페인 내전과 제2 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식민지 등, 그리고 6·25전쟁과  같은 일들은 왜 일어났단 말인가? 이념의 갈등으로 빚어 진 혈투로 많은 이들이 꿈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생을 마 감하지 않았던가?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미국문학 작가인 어니스트 헤 밍웨이(Ernest Hemingway)의 삶이 떠올랐다. 대개의 사람들은 죽음을 피하려고 노력하지만 헤밍웨이는 ‘인 류애’를 실현하기 위해 죽음이 난무한 전쟁터를 스스로 찾아 들어간 행동주의자로서 그의 정신세계는 당대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최근에 헤밍웨이의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코로나19와 같은 재앙을 마주할 수 있는 인생관이 새로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헤밍웨이의 작품에서 얻은 교훈을 여러 사람 과 나누기 위해 나는 이 지면을 활용하기로 했으며, 이 을 읽은 독자들이 지금의 총체적 난국을 극복할 수 있 는 대안을 ‘인류 공동의 연대의식’에서 발견하기를 희망 해 본다.

    아이러니한 세상 1   

    실존적 삶을 지향하는 헤밍웨이의 인생철학이 인간 제 반사에서 일어나는 아이러니를 통해 형성되었다는 주장 은 “아이러니 없이는 진정한 삶이 가능하지 않다”라는 쇠 렌 키에르케고르의 역설(力說)이 단초가 된다. 헤밍웨이 의 작품에서 아이러니는 인간의 유한성을 인식시켜 결 국 삶에서 진실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요소로 작 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1 이 본론은 필자가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 제48집에 게재한  「헤밍웨이의 아이러니에 대한 제고」, 한국동서비교문학학회 동서비교문학저널 40호 에 게재한 「헤밍웨이의 ‘나-너’의 미학 : 부버의 만남 철학을 중심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연구」의 일부를 직접 인용하거나 또는 재구성하여 집필하다.

     이 아이러니는 인간이 불가피 하게 맞이해야 하는 모순적인 삶을 인식하는 것에 머물 게 하지 않고 그것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의 혼을 정화시켜 새로운 삶을 모색할 수 있는 단계로까지 이끈다. 헤밍웨이가 우여곡절이 많은 삶을 살면서 느낀 아이러 니는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전염병이 창궐하 던 시기에 전쟁과 같은 부조리한 일을 겪어야 했던 당대 의 독자들에게 실존적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헤밍웨이의 작품은 코로나19의 위기에 처한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 헤밍웨이는 수차례 유럽에서 발발한 전쟁에 직·간접으로 참여하여 세계정의에 대한 신념을 행동으 로 보여준 작가로서 경험을 토대로 한 그의 작품은 진정 성과 호소력이 짙다. 헤밍웨이의 초기 작품인  『무기여 잘 있거라』는 전쟁과 사랑이라는 주제로 고통과 절망으 로 점철된 세상에서 인간이 피할 수 없는 한계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이며 서술자인 프레드릭 헨리는 제1차 세계대전 에 자원하여 이탈리아 전선에서 복무 중이며 그의 계급 은 앰뷸런스 부대의 중위다. 헤밍웨이는 헨리의 시각을 통해 적·아군조차 구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맹목적인 살육이 자행되는 전쟁터의 실상을 보고한다. 제1차 세 계대전이 신무기의 각축전이라고 불릴 만큼 최신무기는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가며 선과 악의 경 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이 무분별한 참상은 젊은이들 을 전쟁터로 내보내기 위해 갖다 붙인 ‘신성과 광’이라 는 단어와는 도저히 연결될 수 없는 단지 경악을 금치 못 할 현장일 뿐이었다.

    헨리는 마치 브뤼겔의 그림인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을 옮겨 놓은 것 같은 묘사로 이야기의 서두를 꺼내 면서 인간 삶 자체가 아이러니하다는 것을 피력한다. 헨 리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고리지리아의 가을 평원에 는 농작물이 풍성하지만 그 반대편 산들은 폭격으로 나 무들이 모두 타버린 다갈색의 벌거숭이가 되어버렸다. 평화와 공포를 연출하는 풍경의 대비는 마치 봄과 같은 포근한 날씨에 가로수길을 걷는 정경과 달리 부상병들 의 신음소리와 대조를 이루면서 자연이 주는 평온함을 누리지 못하고 서로 아귀다툼을 하는 인간의 우매함을 드러낸다. 

    헨리는 부상병들의 앓는 소리를 무덤덤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전에 콜레라로 7천 명의 목숨이 사 라진 것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단지 7천 명의 사상 자만 생겼다’라는 표현은 헨리가 마치 전쟁에 익숙해져 사람 목숨에 대한 의식이 마비된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 다. 그러나 헨리는 자신이 겪은 정신적 충격에 거리감을 최대한 유지하고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접적인 반응을 피함으로써 인간을 파멸하는 전염병의 위협과 전쟁의 실상을 독자가 스스로 파악하도록 이끈 것이다. 전염병 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도 불구하고 인간들 은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죽이는 아이러니의 극 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계속 쏟아지는 비는 전염병을 돌게 하여 사람 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전쟁터의 분위기를 더욱 처절하게 만든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로 인해 퇴각하는 부대는 결국 혼돈 속에 빠지게 되고 헨리 를 포함한 장교들은 곤경에 처한다. 헨리와 그의 부하들 이 타고 있던 차가 그만 진창에 빠지게 되자 부하들은 차 를 빼낼 생각은 하지 않고 퇴로가 막힐까봐 계속 걸어간 다. 장교인 헨리는 그들에게 나뭇가지를 꺾어오라고 명 령하지만 그들은 헨리의 명령을 수행하지 않고 빠른 걸 음으로 그 자리를 벗어난다. 헨리는 자기로부터 멀어지 는 그들을 향해 총 세 발을 쏘고 그 총에 한 명이 숨지게 된다. 직급으로 묶여진 사회적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 었던 헨리는 장교라는 이름으로 병사를 처형할 수밖에 없는 집행자가 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헨리 자신도 부대를 이탈했다는 죄명 으로 헌병에게 붙잡히게 되면서 지금까지의 상황은 역 전된다. 헨리 중위가 카포레토에서 퇴각하는 도중에 길 을 잃고 헤매는데 이 과정에서 이유를 불문하고 탈자 로 몰리게 되어 즉결 처형에 붙여지는 장면은 이치에 맞 지 않는 사회적 시스템에 얽힌 인간군상의 무력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헨리뿐만 아니라 부대를 이탈했다 는 혐의로 다른 장교들도 순식간에 반역자로 몰리게 되 는데 그들을 심문하는 헌병들은 그들에게 해명할 기회 도 주지 않고 도축업자들처럼 처형해 버린다. 헨리는 자 신도 처형당할 차례가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느낀다. 그 러나 자기 바로 앞에 서 있었던 장교들이 속수무책으로 총살이 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도 그는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 않고 냉정함을 고수한다.

    헌병들이 장교들에게 탈이라는 죄목을 뒤집어씌우기 위해 사용했던 ‘조국의 신성한 땅’, ‘승리의 열매’라는 말 은 억울한 운명에 처한 장교들의 입장과 상충되면서 아 이러니가 연출된다. 전쟁은 사람의 생명을 심판할 수 있 는 권리를 부여받은 채 살육행위가 정당하다는 논리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결국 전쟁이란 터무니없는 기준을 내세워 인간의 목숨을 빼앗는 잔혹한 행위일 뿐이다. 헨 리의 판단이 여기에 미치자 그는 행동으로 자신의 생각 을 옮긴다.

    헨리는 부당한 죽음을 거부하고 강으로 뛰어들어 진짜 탈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 아슬아슬한 장면에서 독자 는 이전에 헨리가 총을 겨누었던 부하의 모습이 떠올랐 을지도 모른다. 헨리도 분명히 이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규칙이나 법이 얼마나 모순적인지를 깨달았을 것이고 그런 불합리한 법을 맹목적으로 복종했던 지난 날을 후회했을 것이다. 그는 부조리한 상황을 조우하면 서 느낀 아이러니를 통로로 죽음이 목전까지 이르는 다 급한 상황 하에서도 탈출을 모색할 수 있는 냉철함을 잃 지 않았다. 헨리는 ‘세상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 ‘일시적인 것과 원한 것’, 그리고 ‘부조 리한 것과 합리적인 것’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모순을 인 식하는 것이 인간의 정신을 수련하는 과정임을 터득하 여 당위성이 배제된 죽음을 거부하고 실존적 투지를 실 현한다.

    그러나 인간의 현실 세계에서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실체 이며 삶과 사랑에 반(反)하는 우주의 냉혹하고 무자비한 메타포다. 사형이란 죽음의 위기를 간신히 피해서 사랑 하는 여인인 캐서린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그의 운명에 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헨리 가 캐서린을 처음 만났을 때는 장난삼아 연애를 시작했 지만 나중에는 그녀와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연인이 되 었고 탈한 뒤에는 캐서린과 함께 스위스로 피신한다. 그곳에서 헨리는 자신의 아기를 임신한 캐서린과 아름 다운 나날을 보내지만 결국 캐서린은 아기를 사산하게 되고 그녀 또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위엄을 잃지 않은 캐서린의 고 결한 모습은 이 소설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 다. 헤밍웨이의 중·후반기의 주인공들이 보여준 극기적 인 삶의 자세가 캐서린으로부터 축적된 산출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캐서린은 이미 자웅 동체처럼 빛과 어둠이 공존하듯 죽음도 삶과 짝을 이룬 다는 것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이렇게 깨달은 사실 을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실천하려는 의지를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헤밍웨이는 ‘죽음’의 과정을 통해 심미적인 삶의 방향을 모색한 작가다. 그는 죽음이 연상되는 극도의 고통을 통 해 자기인식에 도달하고, 죽음 앞에서 느껴지는 공포가 시시각각 려들면서 뿜어져 나오는 감정들을 아이러니 로 승화시켜 죽음에 처한 고통을 초월할 수 있는 힘을 생 성한다. 헤밍웨이가 죽음의 현장인 사냥터와 투우장 그 리고 전쟁터를 찾아다닌 사실만 보아도 죽음을 통해 강 인한 내적의식을 구축하고자 했던 그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헤밍웨이의 주인공들은 일촉즉발의 죽음의 상 황에 처했을지라도 목숨을 구걸하는 비굴한 자세를 취 하지 않는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절제력과 인내심 그리 고 용기가 있으며 무분별하거나 경솔하지 않은 인격을 갖추고 있다. 헨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은 아이러 니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비합리적인 체제에 맥없이 희생양이 되는 것이 아니라 거짓에서 진실을 구분하여 ‘육체는 파괴될지언정 정신은 패배할 수는 없다’ 2는 의 지를 실행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이다. 

    헤밍웨이의 이러한 의지는 어린 나이에 그가 직접 경험 한 죽음의 현장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에 참전하여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옆에 쓰러져 있는 동료를 죽을힘을 다해 부축해 나왔다. 헤밍웨이의 강인 한 삶의 투지와 더불어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이타심은 그의 여러 작품에 녹아 흐르는데, 특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헤밍웨이의 휴머니즘의 절정을 보여준 다. 실제로 스페인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폭격이 빗발 치는 전쟁터로 뛰어 들어갔던 헤밍웨이의 희생정신은 마리아나 다른 동료들의 안전을 위해 대신 죽음을 선택 하는 주인공 로버트 조던의 사랑으로 치환되었다. 이 소 설에서 헤밍웨이는 마치 철학가 마틴 부버가 말하는 ‘나 -너’의 관계를 통해 인간은 참다운 존재가 될 수 있으며 진정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호소하는 듯하다.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제사로 도입 한 존 던의 「죽음에 임하는 기도」는 인간 개개인의 운명 이 각기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 어 있음을 표방한다. 헤밍웨이의 인류애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 제사는 사람들이 왜 함께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인간이 참되게 존재하기 위해서 는 진정한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의식을 심어주고 있다. 1936년에 현대문명과는 멀리 떨어져 다소 원시적인 삶 을 살면서 열정적으로 투우를 즐기던 스페인 사람들을 헤밍웨이는 사랑하기 때문에 전쟁으로 인해 그들이 겪 고 있을 고난을 방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공화파를 지 지했던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란이 시작되던 해에 그들 을 위한 의료시설을 위해 많은 돈을 기부했다. 또한 1939 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수차례 스페인을 방문하면서 전 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당시의 상황을 보고하는 을 써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헤밍웨이의 자전적 소설 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그가 스페인 내전에 서 경험한 일들을 소설형식으로 기록한 작품으로 인간 다운 삶의 의미를 찾도록 이끈다. 

    내전이 일어난 무렵에 헤밍웨이가 스페인을 방문하여 목격한 것은 길거리 여기저기에 나뒹구는 이탈리아인들 의 시체다. 그는 기자라는 자신의 본분을 조금도 잊지 않고 내란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했다. 그러나 헤밍 웨이의 보도로 인해 공화파를 지지해왔던 그의 정치 성 향은 의심을 받게 된다. 헤밍웨이는 자신을 왜곡된 시선 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비난에 연연하지 않고 전쟁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지를 보여주기 위 해 스페인 내전의 실상을 숨김없이 알리는 것에만 주력 하다. 이 내란이 한 국가의 분쟁을 넘어 국제적 갈등 으로 번지면서 독일과 이탈리아의 새로운 무기실험을 위한 전투로 이어졌고 공화파가 항복한 1939년에는 공 중폭격과 정치적 사형집행 등으로 무려 80만 명의 목숨 이 이슬로 사라졌다. 이들 중 부지기수는 정치이념과는 무관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로 남는다. 

    헤밍웨이의 페르소나인 조던은 직접 전쟁의 폐해를 실 감하면서 여러 갈래로 나뉜 정치적 이념들에 대해 의문 을 제기한다. 그는 정치적 대의가 국민의 안위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과 약탈 그리고 살육만을 조 장할 뿐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이 소설은 스 페인 내란이 잠시 소강상태에 있던 1937년 5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부터 화요일까지 72시간에 걸쳐서 조던 이 공화파 게릴라 부대와 합류하여 파시스트 주둔군과 교전하는 이야기로 구성된다. 미국에서 대학교수던 조던은 휴가를 맡아 스페인 내전에 가담한다. 그는 전쟁 을 지휘하고 있던 소련의 군사 전략가인 골즈 장군에게 공격 개시와 함께 다리가 폭파되어야 한다는 명령을 받고 현지 안내원인 안젤모와 함께 정찰을 시작하면서 소 설이 전개된다.

    헤밍웨이가 공화파의 대의를 위해 투혼을 쏟아낼지라도 독자들에게는 정치적 신념을 넘어 아군이든 적군이든 모두가 하나의 인류임을 각인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일환으로 등장인물인 안젤모의 입을 통 해 비록 나라를 지키기 위해 살인을 하고 있지만 자신의 행위가 옳지 않다는 것을 계속해서 토로하도록 이끈다. 안젤모는 아무리 적이라도 그들이 주어진 생을 최선을 다해 살면서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를 깨우치길 바라고 있다. 이어서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상대의 증오 심을 불러일으키며 악순환이 될 뿐이라고 언급한다.

    조던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가담한 공화파 조직 내에 서 잔인하게 사람을 죽여 온 파블로가 있다는 사실로 인 해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심기가 불편하다. 그러나 누군 가를 진심으로 아껴줄 수 있는 조던의 심성은 대원들을 배신하고 부대를 떠났던 파블로의 마음에 변화를 주어 다시 돌아오도록 만들었다. 인간이 어떤 부조리한 상황 에 놓이더라도 타인의 본질적인 가치를 인정하여 서로 의 부족한 점을 받아들이고 보완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비로소 진정한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 는 듯하다. 조던의 이러한 이타심은 동료들을 끝까지 지 켜주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할 수 있는 단계로까지 승화된다. 

    조던은 다리를 폭파시킨 후 부상을 입게 되는데 이 절체 절명의 위기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먼저 챙기기보다는 동료들이 안전하게 도망갈 수 있도록 사지에 남아 추격 자들을 저지한다. 파시스트들에게 강간을 당한 후 트라 우마에 시달려왔던 마리아를 진실한 사랑으로 품어주었 던 조던이 마리아가 서둘러 피하기를 바라면서 건넨, ‘이 제 당신은 나인 거야’란 말은 헤밍웨이가 세상을 향해 절 실하게 외치고 싶은 ‘인류는 하나’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조금의 망설임 없이 죽기를 각오한 조던의 결정은 사랑 하는 여인과 스페인 사람들을 위한 선택이었으며 더 나아가 온 인류를 위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조던의 살신성 인의 자세는 그의 육체를 담보로 더 큰 재앙을 막아낼 수 있는 초월적 인류애의 실현이다. 조던의 마지막 행동은 비극의 절정이지만 물리적인 시련을 뛰어넘어 정신적인 승리를 보여준다. 조던이 적군에게 폭탄을 맞고 죽음이 임박해오는 상황에서도 사랑의 시선으로 적군의 비행기 를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인류는 하나라는 그 의 확고한 신념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동료들을 위해 지독한 고통을 참아 내면서 방 호태세를 늦추지 않던 조던의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이 타심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헤밍웨이는 정치적 이념을 떠나 전쟁에 가담한 모든 사 람들은 하나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서로 총을 겨누어 살 육하는 행위는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피진 한다. 이렇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실천하기 위 해 죽음과 폭력이 난무한 현장도 주저 없이 달려간 헤밍 웨이의 투혼은 그의 작품에서 살아 움직이면서 부조리 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심금을 울리는 메시 지를 남긴다. 

    헤밍웨이가 일생을 통해 터득한 교훈은 지구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따뜻한 사랑을 실천했을 때 비 로소 아이러니한 세상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 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이 초읽기로 다가오는 순간에도 ‘적군과 아군은 모두 하나의 인류’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조던의 호소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마음을 기 울여서 지켜내어야 하는 대의는 인류 간의 상호의존과 연대의식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한 개인 의 행동과 명분은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상황에서 공포 감을 극복하기 위한 의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거 대한 폭력에 맞서 타인을 책임질 수 있는 인류애로 전위 (轉位)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 사랑으로 하나 되어 

    20세기 중반까지 전 세계에서 발발한 크고 작은 전쟁들 은 일부 공격적 성향을 지닌 소수의 지도층들이 악의적 으로 슈퍼바이러스를 퍼트린 전파자처럼 온 세상을 핏 물로 적셔놓은 인재다. 당시 ‘길 잃은 세대’들로 전락 한 많은 젊은이들은 삶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 고 허무주의에 함몰된 채 본능이 이끄는 대로 하루하루 를 견디며 살아야 했다. 하지만 방황하던 이들도 폐허가 된 세상을 다시 재건하려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 울다. 상처로 얼룩진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음 세대들 에게는 결코 이러한 재앙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다짐 을 하면서 지난날 인간들이 범한 오류에 대해 반성하기 도 하고 재난의 원인을 찾아 대안을 논의하며 더 나은 세 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흑사병이 휩쓸고 간 유 럽에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의식을 환기시킨 르네상 스 운동이 이런 까닭으로 시작되었으며, 여러 차례의 재 난으로 몸살을 앓아야 했던 20세기를 거치면서 인간의 개개인의 가치가 더욱 존중받게 된 계기도 이런 연유에 서 비롯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고무줄 같은 탄력성으로 불가항력인 절망에서도 희망의 싹을 틔워내는 인류의 회복력은 잘못된 사회적 패러다 임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보려고 노력한 수많은 사람 들의 의식의 결과물이다. 헤밍웨이에게 향을 받은 까 뮈가 『페스트』에서 살아있는 사람에게 사형을 구하는 것 을 아주 당연히 여기는 아버지의 죗값을 짊어지고 역병 이 도는 곳을 찾아 들어와 환자를 돌보고 페스트를 퇴치 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타루’를 통해 인간다운 삶의 유형 을 제시했듯이, 세상을 정화시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으 로 인류는 잘못된 방향으로 틀어지는가 싶다가도 사람 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면서 다시 살만한 세상으로 선회 하는 것이다. 

    예수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당부했듯이, 부 처가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라고 가르쳤듯이, 공자가 중요하게 여긴 인(仁)이 사랑이라고 언급했듯이 나-너와 의 사랑, 이웃 간의 사랑 더 나아가 인류와의 사랑은 우 리가 당면한 힘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자 열쇠라 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으며 또 실천하려는 마음이 우 리의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기에 어떤 불행이 숙명 처럼 다가오더라도 우리는 함께 지금의 역경을 딛고 일 어설 수 있지 않을까.

    BOOK 저널리즘

    BOOK저널리즘은 책의 무게감, 소셜미디어의 신속성, 저널리즘을 추구합니다

    + more

    진주평론(晋州評論)

    계간지로 발행되는 진주평론을
    보실 수 있는 공간입니다

    + more